유발 하라리 / 전병근 옮김



<제1부 기술적 도전>

1. 환멸 | 역사의 끝은 연기되었다. 

- 자유주의와 시장논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직면한 기술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2. 일 |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땐 일이 없을지도 몰라.

- 기술의 발전은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보편 기본 지원의 폭이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는 어디까지인가?


3. 자유 | 빅데이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정치 체제다. 다른 모든 체제를 제외하면.'

- 인간의 감정(마음)이 조작 가능 하다면, 여전히 민주주의가 최선인가? 권위는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다. ... 알고리즘은 장애도 많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다. 

- 돌이켜 보면 인류 역사상 법 집행의 한계야말로 입법자들의 편견과 실수와 남용에 대한 그나마 다행스러운 견제 장치였다.  


4. 평등 | 데이터를 가진 자가 미래를 차지한다. 

- 21세기에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생겨날 수 있다. 세계화와 인터넷은 국가 간 격차를 메우지만 계급 간 균열은 키울 조짐을 보인다. ... 종 자체가 다양한 생물학적 계층으로 나뉠 수도 있다. 

- AI와 생명공학이 결합된 부익부 빈익빈 -> 반영구적 불평등 -> 대중이 쓸모 없어짐 -> 소수 엘리트의 선의에 인류의 미래가 좌우됨. 

- 데이터 소유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일 수 있다. 



<제2부 정치적 도전>

5. 공동체 |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폭발적인 연결과 오프라인간의 간극은 어떻게 메워질 것인가?


6. 문명 | 세계에는 하나의 문명이 있을 뿐이다.

- 인간 집단은 다른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이며, 인간의 역사적 갈등 또한 자연선택 과정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 (인간의 사회체계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지는 않으며, 수백 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다. 

- 인간 집단이 겪는 과정을 보면 지속되는 것보다 변하는 것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스토리텔링 기술 덕분에 스스로 오랜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어떤 혁명적 변화를 겪더라도 옛것과 새것을 교직해서 한 가닥의 실을 자아낸다. ... 이슬람의 진정한 핵심이 무엇인지를 두고 벌어진 열띤 논쟁은 한마디로 무의미하다. 이슬람교에는 고정된 DNA가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무슬림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 오늘날에는 단일한 정치 패러다임이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진다. ... 동일한 외교 의례와 공통의 국제법에 의견을 같이한다.

- 정체성은 일치보다 갈등과 고민으로 규정된다. 2018년에 유럽인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피부색이 희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민에 관해, 유럽연합에 관해, 자본주의의 한계에 관해 격렬히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고, 고령화와 만연한 소비주의,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것을 뜻한다. 

- 21세기에 인류가 직면할 큰 도전들은 본질적으로 전 지구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 이런 논쟁과 갈등이 우리를 서로 고립시킬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훨씬 더 상호 의존적이 될 것이다. 


7. 민족주의 | 지구 차원의 문제에는 지구 차원의 해답이 필요하다. 

- 상식과는 반대로, 민족주의는 인간 정신의 자연적이고 항구적인 요소가 아니며 인간 생물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도 않다. 

-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일 부족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 그런 이점들이 있음에도 부족들과 씨족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 "나는 이 사람들을 아는가?"

- 그렇다고 해서 민족 단위의 유대감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거대한 체계일수록 대중의 충성심 없이는 작동할 수 없고, 민족주의에는 인간의 공감 반경을 확장하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보다 온건한 형태의 애국심은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도 가장 자애로운 것에 속한다. 

- 문제는 선의의 애국심이 국수주의적 초민족주의로 변질될 때 일어난다. 내 민족은 독특하다고 믿는 차원을 넘어, 내 민족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우월하고, 내 모든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며,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내가 져야 할 중요한 의무는 없다고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폭력적 갈등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 핵전쟁, 생태학적 붕괴, 기술적 파괴... 민족주의가 제시할 수 있는 답은 없다. 

- 이전 세기에 민족 정체성이 형성된 것은 인류가 지역 부족 범위를 훌쩍 넘어가는 문제와 기회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 21세기에 이르러 ... 개별 국가는 지금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전을 해결하기에 올바른 틀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 우리에게는 지금 전 지구 차원의 생태계와 경제와 과학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민족 단위의 정치에 고착돼 있다. 

- 그렇다고 '세계 정부'를 수립하자는 말은 아니다. ... 그보다는 한 나라나 심지어 도시 단위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도 전 지구 차원의 문제와 이익에 좀 더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뜻이다. ... 그렇다면 혹시 우리는 세계를 하나로 묶는 데 인류의 보편적, 종교적 전통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8. 종교 | 이제 신이 국가를 섬긴다.

- 전통 종교는 기술과 정책 문제와는 대체로 상관이 없다. 반면에 정체성 문제와는 상관이 아주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대개 해법이 되기보다 문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 과학의 승리는 너무나 완벽해서 종교에 대한 우리의 개념마저 변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종교를 농사나 의료와는 관련짓지 않는다. 경제 문제에서도 종교가 상관성을 잃게 된 것은 종교 학자들이 경전 해석에서 오랫동안 연마해온 전문 지식 때문이었다. 하메네이가 어떤 경제 정책을 택하든, 그는 언제나 쿠란에 맞게 해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쿠란은 진정한 지식의 원천이 아니라 다른 것을 뒷받침하는 권위의 원천 정도로 강등됐다. 

- 하지만 마르크스가 종교를 기술과 경제의 강력한 힘을 가리는 상부구조 정도로 일축한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인간의 힘은 대규모 협동에서 발휘되는데, 대규모 협동을 끌어내려면 그만큼 큰 정체성을 구축해야만 한다. 거대한 정체성이 기반으로 삼는 모든 것은 허구의 이야기지, 과학적 사실이나 경제적 필요가 아니다. 

- 모든 종교적 전통은 특정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이웃을 구분한다. 밖에서 봤을 때, 사람들을 구분하는 종교적 전통들은 사소해 보인다. 프로이트는 사람드르이 그런 '작은 차이 나르시시즘' 강박을 비웃었다. 하지만 역사와 정치에서 작은 차이는 아주 멀리까지 갈 수 있다. 

- 일본은 고유 종교인 신도를 일본 정체성의 초석으로 고수했다. 사실 신도를 재발명했다. ... 그것은 마술처럼 통했다. 일본은 숨가쁘게 근대화했고, 동시에 국가에 대한 광신적인 충성을 이끌어냈다.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정부들이 오늘날 일본의 사례를 따른다. 이들은 근대화의 보편적 도구와 구조를 채택하는 동시에 독특한 국가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전통 종교에 의존한다. 

- 기술의 발달과는 별도로 종교적 정체성과 의례에 관한 논쟁이 신기술의 사용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 불행히도, 그런 점에서 전통 종교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의 치유책이 아니라 일부이다. ... 지금은 민족주의의 시녀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 인류는 지금 단일 문명을 이뤄 살고 있으며, 핵전쟁과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의 문제는 지구촌 차원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와 종교는 여전히 우리 인류의 문명을 다양한 진영들로 사분오열시키고 있다. 


9. 이민 | 더 나은 문화를 찾아서. 

- 이민 수용을 의무로 봐야할까, 아니면 호의로 이해해야 할까? ... 모두에게 문을 여는 것이 의무일까, 아니면 선별해서 받거나 심지어 이민을 전면 중지하는 것이 국가의 권리일까?

- 이민자들은 입국이 허용되면 그 나라 문화에 어느 정도까지 동화되어야 할까?

- 이민자들이 수용국에 동화되려고 진지하게 노력한다면, 이들이 완전한 사회 성원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 위와 같은 협의점들은 실제로 작동하는가? 양쪽은 각자 자신의 의무를 지키고 있는가? 

- 전통적인 인종주의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오늘날 세계는 '문화주의자들'로 가득하다. ... 흑인이 열등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주장은 사회에서 퇴출된 반면, 흑인이 문제가 있는 하위문화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말은 흔하게 오간다. ... 이는 어떤 면에서는 좋지만, 어떤 점에서는 나쁘다. 

- 문화주의자들의 어떤 주장이 타당하지만, 세 가지 공통된 결함도 보인다. 첫째, 문화주의자들은 그 지역에서 우월하다는 것을 객관적 우월성과 혼동할 때가 많다. 둘째, 시기와 장소를 명확하게만 규정한다면 경험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너무 일반적인 주장을 하다 보니 구체적으로는 별 뜻이 없을 때가 허다하다. 최악의 문제점은, 통계를 기반으로 한 주장을 가지고 개인들을 예단할 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제3부 절망과 희망> 

10. 테러리즘 | 당황하지 말라.

- 테러리즘이란 말 그대로 물리적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퍼뜨리는 방법으로 정치 상황을 바꾸려 드는 군사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적에게 물리적으로는 큰 피해를 입힐 수 없는 아주 약한 일당이 주로 사용한다. 

- 하지만 국가는 가끔씩 이성을 잃고 너무 강력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대응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테러범들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 국가는 왜 테러범의 도발에 그토록 민감할까? 국가가 그런 도발을 이겨내기 어려운 것은, 근대 국가가 생겨날 때 공공 영역에서는 정치 폭력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 위에 정당성을 두었기 때문이다. 

- 오늘날 일어나는 테러의 대부분은 가상의 공포를 낳는 데 반해, 미래의 핵 테러나 사이버 테러, 바이오 테러는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가정한 시나리오들과 지금까지 목격해온 실제 테러 공격을 대단히 조심해서 구분해야 한다. 

- 우리가 모든 결과에 미리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핵 테러도 확실히 예방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인류의 의제에서 1순위가 될 수는 없다. 핵 테러의 위협을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일반적인 테러에 과잉 대응하는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둘은 다른 문제이고 해법도 달라야 한다. 

- 많은 논평가와 일반인들은 혹시 제3차 세계대전이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 이런 전쟁의 불안은 과장된 테러 공포보다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11. 전쟁 | 인간의 어리석음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 

- 21세기에는 주요 강대국들이 성공적인 전쟁을 수행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뭘까? 한 가지 이유는 경제의 성격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경제 자산이 주로 물질이었다. ... 21세기 경제 자산은 ... 기술적, 제도적 지식으로 이뤄져 있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21세기 전쟁이 아무리 실속 없는 사업이라 해도 그런 사실이 평화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개인 차원에서나 집단 차원에서나 인간은 자멸을 부르는 행동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대전을 얼마나 두려워해야 할까? 두 극단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우선, 전쟁은 결고 불가피하지 않다. ... 다른 한편, 전쟁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도 순진한 일이다.


12. 겸손 | 당신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자신들의 문화가 인류 역사의 주축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 모든 형태의 겸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신 앞에서의 겸손일 것이다. 사람들은 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춘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을 활용해 신도들 위에 군림한다. 


13. 신 | 신의 이름을 헛되이 일컫지 말라.

- 신은 존재하는가? 답은 머릿속에 어떤 신을 떠올리느냐에 달렸다. 우주의 신비? 아니면 세상의 입법자? 사람들은 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끔 경이로운 거대 수수께끼를 두고 이야기한다.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전혀 없다. 우리가 이 불가사의한 신을 불러오는 것은 가장 심오한 우주의 수수께끼를 설명하려 들 때다.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 존재하는가? 근본적인 물리 법칙은 어떻게 생겨났나? 의식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이러한 무지에 우리는 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부여한다. 

-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결국은 의미론의 문제다. ... 신에 대한 믿음이 다양한 사회 질서에 필수적이었으며, 때때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하지만 신이 우리에게 어진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해도, 종교적 믿음이 도덕적 행동의 필수 조건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도덕상에 관한 한 비자연적인 무언가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어떤 종류의 도덕이든 자연적이다. 

-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 어떤 행동이 어떻게 해서 자신이나 남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낳는지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따라서 자신의 행복도 남들과의 관계에 아주 많이 의존한다. 


14. 세속주의 | 당신의 그늘을 인정하라. 

- 세속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세속주의는 가끔 종교의 부정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 스스로 세속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세속주의란 이런저런 종교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기보다 나름의 일관된 가치 기준으로 규정되는, 대단히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세계관이다. ... 그들은 인간의 도덕과 지혜가 어느 특정 장소와 시간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도덕과 지혜는 모든 인간의 자연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다라서 최소한 몇몇 가치들은 세계 도처의 인간 사회에서 저절로 생겨났으며, 이것이 무슬림이나 기독교인이나 힌두교도나 무신론자에게나 공통적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 세속주의의 이상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실이다. ... 진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어디에서 나온 것이든 신성하게 여긴다. 

- 또 다른 가치는 연민이다. ... 세속주의 도덕률은 이런저런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데서 나온다. ... 관련된 당사자들의 느낌을 신중히 저울질하고 폭넓게 관찰하고 가능성들을 검토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타협책을 찾는다. 

- 세속주의의 쌍둥이 가치인 진실과 연민에 헌신하는 태도는 또한 평등을 향한 헌신으로 귀결된다. ... 근본적으로는 모든 선험적인 위계를 의심한다. 

- 우리는 생각하고 조사하고 실험할 자유 없이는 진리는 물론이고 고통에서 벗어날 길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세속주의자는 자유를 중시하며, 어떤 텍스트나 제도, 지도자에게 최고 권위를 부여해서 옳고 그름의 최종 심판으로 삼는 일을 삼간다. 

- 편견과 억압적인 체제에 맞서 싸우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 세속적인 교육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증거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의견을 의심하고 다시 검증하기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 

- 세속주의자는 책임을 소중하게 여긴다. ... 우리가 행하는, 그리고 하지 않는 모든 것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 이들 가치 중에 세속주의에만 국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다만 세속주의 규범이 종교적 교리와 충돌할 때는 후자가 양보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그렇다. 

- 세속주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신을 믿지 말라거나 종교 예식에 참여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금지의 교의 주입이 아니다. 오히려 세속주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진실과 믿음을 분별하고,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모든 존재를 위한 동정심을 계발하며,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의 지혜와 경험을 이해하고,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자신의 행동과 세계 정체에 책임을 지도록 가르친다. 

- 따라서 세속주의를 두고 윤리적 헌신이나 사회적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사실 세속주의의 주된 문제는 그것과 정반대다. 윤리적 기준을 너무 높게 잡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아무 구속력은 없는 진실과 연민의 추구에만 의존해서는 운영될 수 없다. ... 의심스러운 추 cm을 내세워서는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거나 급진적인 경제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속적인 운동은 번번이 독단적인 신조로 탈바꿈한다. 

- 모든 도그마가 똑같이 해로운 것은 아니다. 어떤 종교적 믿음은 인류를 이롭게 했듯이 마찬가지로 세속주의 도그마들 중에서도 어떤 것들은 이로웠다. 특히 인권의 신조가 그렇다. ... 역사상 이보다 더 인류의 행복과 복지에 기여한 신조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역시 도그마일 뿐이다. 

- 하지만 모든 사피엔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의견의 자유권'이 주어졌으며, 따라서 어떠한 검열도 자연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인류에 관한 진실을 놓치게 된다. 자신을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을 지닌 개인'으로 규정하는 한,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자신의 정신을 규정하는 역사적 힘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이러한 무지는 ... 21세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생명권을 신봉한다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생명기술을 이용해야 할까? 자유권을 신봉한다면, 숨은 욕망을 찾아 읽어내고 충족시키기 위해 알고리즘에 힘을 부여해야 할까? 모든 인간이 동등한 인간적 권리를 누린다면 초인간은 초인권을 누려도 될까? '인권'이라는 도그마의 믿음을 고수하는 한, 세속주의를 따르는 사람들로서는 그런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그늘이 있다. 어떤 신조를 따르든지 불가피한 그늘을 인정하고, "우리에게는 일어날 리 없다"라는 안일한 확신을 피해야 한다. 세속주의 과학은 전통 종교 대다수와 비교하면 한 가지 큰 이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그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4부 진실>

15. 무지 |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

- 앞에서 금세기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과 사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이것들만 해도 너무 과해서 도무지 대처할 수 없겠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면, 당신 생각이 옳다. 

- 자유주의 사상의 합리적 개인을 과신하는 것은 실수다. ... 개인성 또한 신화이다. 

-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 하지만 그럴 경우 도덕과 정의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불의의 차이를 분별하긴 기대할 수 있을까? 


16. 정의 | 우리의 정의감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 겉으로 봐서는 예전의 문제와 지금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문제는 규모다. 

- '의도의 도덕성'이라는 개념으로 문제를 피해 가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 최고의 도덕적 정언명령에 따르면 아는 것도 의무가 된다. 

- 지금 세계에서 불의의 대부분은 개인의 선입견보다는 대규모의 구조적 편향에서 나온다. 

- 설사 세계가 당면한 주요 도덕적 문제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도 우리 대부분은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다음 네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사용한다. 첫 번째는 이슈를 축소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음모 이론을 짜는 것이다. 네 번째이자 최후의 방법은 도그마를 만들고,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나 제도, 우두머리를 믿고 어디든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17. 탈진실 | 어떤 가짜 뉴스는 영원히 남는다.

- 사실 인간은 늘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왔다. 호모 사피엔스야말로 탈진실의 종이다.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 데서 나온다. 석기시대 이래 줄곧 자기 강화형 신화는 인간 집단을 하나로 묶는 데 기여해왔다. 

-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허구나 신화보다 공동의 합의를 통해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 실제로는 '어떤 것이 인간의 협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어떤 것이 본질적으로 가치 있다고 믿는 것' 사이에 선을 긋기란 불가능하다.  

- 가짜 뉴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허구와 실체를 구분하기 위해 훨씬 더 열심히 분투해야만 한다. 완벽을 기대할 수는 없다. 

- 개략적인 요령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믿을 만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두 번째 요령은, 만약 어떤 이슈가 특별히 중요해 보인다면 그것에 관련된 과학 문헌을 찾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18. 공상과학 소설 | 미래는 영화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협력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고, 협력을 그토록 잘할 수 있는 비결은 허구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과 화가, 극작가는 최소한 군인과 기술자 만큼이나 중요하다. 

- 아마도 21세기 초에 가장 중요한 예술 장르라고 하면 공상과학 소설일 것이다. 

- 오늘날 과학 기술 혁명의 결과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진정한 개인과 진짜 현실이 알고리즘과 티브이 카메라에 의해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자체가 신화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최선의 과학적 이론과 최신의 기술 장비에 따르면 정신은 어떤 경우에도 조작에서 자유롭지 않다. 

- 자아를 규정하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생존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제5부 회복탄력성>

19. 교육 |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다.

- 지금 우리는 시간이 없다. 다음 수십년 사이에 우리가 내릴 결정들이 생명 자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관을 기초로 해서만 그 결정들을 내릴 수 있다. 

- 비록 지금으로서는 세부 내용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변한다는 것만큼은 유일하게 확실한 미래의 진실이다. 

- 앞으로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계속 쇄신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50세 정도의 젊은 나이라면 확실히 그래야만 한다. 

- 심대한 불확실성이 일시적 결함이 아니라 항구적인 특성인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세계에서도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이 필요할 것이다. 반복해서 지금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중에서도 어떤 것은 버리고, 그전에는 자신이 몰랐던 것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20. 의미 |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다.

- 만약 내가 어떤 식으로든 생명의 원 이야기를 믿는다면, 그것은 내게 고정된 진정한 정체성이 있어서 그것이 내 삶 속에서 의무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 나의 참다운 정체성을 규정하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야기의 모든 사례들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이야기의 규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모든 이야기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 나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꼭 맹점이나 내적모순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완전무결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야기는 두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첫째, 내가 맡을 어떤 역할을 부여해야만 한다. 둘째, 좋은 이야기는 무한정 확장될 필요는 없지만 지금 나의 지평은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 좋은 이야기는 나에게 역할을 주면서 나의 지평 너머로 뻗어가야 하지만 반드시 진실일 필요는 없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이런 허구를 믿을까? 한 가지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은 이야기 위에 구축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우리의 개인 정체성뿐만 아니라 집단의 제도 역시 이야기 위에 서 있다. 

- 인간이 이야기르르 믿고 싶어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실제로 믿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미 수천 년 전에 사제들과 무당들은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의식이다. 의식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고 허구적인 것을 실제로 만드는 마술적인 행동이다. 

- 오늘날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우리는 의미를 찾고 싶어 하면서도 우주에 관해 이미 다 만들어진 어떤 이야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에 관한 자유주의의 해석에 따르면 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우주가 내게 의미를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우주에 의미를 준다. 

- 궁극에는 우리의 욕망, 심지어 이런 욕망에 대한 반응까지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나 느낌, 욕망에 덜 집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 의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 의지의 폭정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내디뎌야 할 결정적인 걸음은, '자아'야 말로 우리 정신의 복잡한 매커니즘이 끊임없이 지어내고 업데이트하고 재작성하는 허구적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페이스북 계정이나 자기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와 자신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몸과 마음의 실제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 당신은 바람이 아닌 것처럼, 당신이 체험하는 생각과 감정과 욕망의 혼합체도 아니다. 또한 그것을 지나오고 난 눈으로 보고 들려주는 세탁된 이야기도 분명히 아니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체험했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는 없다. 가질 수도 없다. 그 체험들의 합도 아니다. 

- "나는 누구인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은 당신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

- 부처는 우주의 세 가지 기본 현실을 설파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지속적인 본질이란 없으며,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 이런 큰 이야기들 모두가 우리 자신의 정신이 만들어낸 허구라 해도 실체는 여전히 그대로 존재한다.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 답은 결코 이야기가 아니다. 


21. 명상 | 오직 관찰하라. 

- 사람들은 말한다. "영혼은 출생에서 죽음까지 지속되며, 삶을 한 데 묶는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 과학은 정신의 신비를 풀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된 이유는 효율적인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 정신을 연구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 뇌를 연구하는 것과 다른 작업이다. 물론 현재 뇌 연구에서 사용하는 도구와 실행 방법을 포기하라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명상이 그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완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자기 관찰은 결코 쉬운 적이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 질 수 있다. ...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관찰하려 할 때 일반적으로 발견한 것은, 그와 같이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 기술이 개선되면서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첫째, 돌칼이 점차 핵미사일로 진화함에 따라 사회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더욱 위험해졌다. 둘째, 동굴 벽화가 점차 티브이 방송으로 진화함에 따라 사람들을 속이기는 더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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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를 하고 일찍 퇴근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명상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격변을 앞두고 기존 세상을 지배해 온 스토리들인 종교, 자유주의, 세속주의, 인권 등의 한계를 적시하며 탈진실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점까지 논지를 전개한 뒤, 대안이 될 스토리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손에 들려주는 건 외부의 스토리로 자신을 서술하지 말고 그저 관찰해 보라는 클리셰 정도이다. 나는 꽤 fair 하다고 생각한다. 몇 천 년의 결과로 득세해 온 거대 스토리들을 낱낱이 해체한 뒤 대체 어떤 스토리를 제안할 수 있겠는가. 이제 독자인 내 몫이다. 기존 가치관의 기반이 되어온 인본주의나 세속주의 등을 일거에 대체할 안을 떠올리진 못할 테지만, 어떻게 변주해야 할지 고민이다. 답이 없다는 trivial solution 말고 높은 설득력을 가지는 pseudo-solution을 그려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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