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 조현욱 옮김


- 별 볼일 없었던 인류는 인지혁명 이후 픽션을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생물학적 영역의 구속 내에서 행동과 능력의 한계를 극도로 넓힐 수 있었다. 

- 농업혁명 이후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인구 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상상의 질서는 물질 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고,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하며,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한다. 

- 수천년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통일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여전히 '고유'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고유성'이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발달된 무엇,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대의 지역전통으로 구성된 것을 뜻한다면,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 문화가 하나도 없다. 

-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진화적 구분을 넘어서기 위해 등장한 질서는 화폐 질서, 제국의 질서, 종교의 질서 등이 있었다. 

-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장이나 정치는 second order chaotic system(예측에 대해 반응 하는 카오스)이다. 그렇다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현대 과학은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용의가 있다. 라틴어로 표현하면 ignoramus에 기반을 두고 있다. 2)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3) 이론을 창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용해서 새 힘을 획득하고자 한다. 

- 하지만 현대과학은 선조들이 대처할 필요 없었던 심각한 문제를 하나 제기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며 지금의 지식도 잠정적인 것이라는 가정은 우리가 공유하는 신화에까지 적용된다. 이 신화들 중 많은 것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는 어떻게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공동체, 국가, 국제 시스템은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정치사회적 질서를 안정시키려는 현대의 모든 노력은 다음의 두가지 비과학적 방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1) 하나의 과학이론을 택해서 통상의 과학적 관례와는 반대로 그것이 궁극적인 절대진리라고 선포하는 것. 2) 과학은 내버려두고 과학과 무관한 절대진리에 따라 사는 것. 이것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전략이었다. 

- 현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신뢰하는 덕분이며, 자본주의자들이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할 의사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와 원자재는 유한하고, 이들이 고갈된다면 성장에 대한 믿음은 깨질 것이다. 이들은 정말 유한할까?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고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 인류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자원 희소성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반대로 생태계 파괴에 대한 두려움은 근거가 너무 확실하다. 

- 현대사회의 속성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카멜레온의 색을 규정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 행복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는 '주관적 안녕'이다. 즉, 내 삶이 진행되는 방식에 대해 느끼는 즉각적인 기쁜 감정이나 장기적인 만족감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내부 생화학 시스템은 행복 수준을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듯 하다. 진화에서 행복과 불행이 맡는 역할은 생존과 번식을 부추기거나 그만두게 하는 것과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진화의 결과 우리가 너무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앞 두 가지의 주관적 요소가 전부일까? 불교에서는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과도 무관하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다. 

- 대부분의 역사서는 사회적 구조, 제국의 흥망, 기술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생명의 역사에서 지적설계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공학을 통해 지적인 설계가 지배하는 우주적인 새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다. 만일 사피엔스의 역사가 정말 막을 내릴 참이라면, 우리는 그 마지막 세대로서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데 남은 시간의 일부를 바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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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운 경험이었다. 말이 잘 통하는 박식한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 더욱이 그 친구가 내 생각을 지지하는데다 지평을 넓혀주는 느낌까지 들게 하는 독서라니.

사회의 질서를 부여하는 도덕과 정의, 종교, 국가, 화폐 등의 관념이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관점, 그리고 그런 관념들이 욕망의 형태까지 결정한다는 주장, 주관적 안녕이란 정의에서 출발해 나와 주변의 내러티브를 일치시키는 지점을 지나 주관의 영역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행복을 기술하는 것 까지 마치 내 생각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현대 과학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이나, (second order) chaotic system인 사회에서 과거를 통한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 현대 경제 시스템의 작동 메카니즘을 설명하는 부분, 현대 사회의 속성을 언급하는 부분 등도 내가 전공으로 삼고 공부해왔던 관점들과 일치해서 너무 반가웠다.

뿐만 아니라, 농업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자원 고갈에 대한 해석, 역사서의 지향점에 대한 설명 등은 내가 접해보지 못한 신선한 것들이었다.

충돌이 있었던 지점은 한 곳이었다. 사회 관념이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일치했지만,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적은 수의 '보편타당한 가치'(e.g. 생명의 존엄성)가 존재할 거라고 생각해온 반면, 저자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예를 통해 이런 '가치'들이 인간에게 비과학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는 하나의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적인 관점 하에서는 납득할만하다고 느껴지고, 개인적으로는 좀 더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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